이런 저런


  Kwon
 2011년 2월 9일 수요일-최고은 작가님의 명복을 빌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찾았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기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더욱 더 빛나 보인다.
꿈은 소중하다, 분명히.

어제 새벽, 뉴스에서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나는 최고은 작가를 알지 못한다. 이번 기사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고, 그녀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는 ‘격정 소나타’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젊은 최 작가가 지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후 가슴이 너무나 먹먹해졌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아무런 능력 없이 밥 한 끼를 못 먹어 굶고 있는 이웃도 셀 수 없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비슷한 분야에 있는, ‘작가’라는 또 다른 호칭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인 나는, 젊은 작가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 대략은 알 거 갔기에 그 사실이 다른 무엇보다 절절하게 다가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최고은 작가는 2002년 단편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한 후, ‘새벽정신(2004)’, ‘젖꼭지가 닮았다(2004)’ 등을 발표했고, 2006년에는 영화 ‘격정 소나타’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분명 재능이 넘치고 추진력이 있는 예술인이었던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창작자에 대한 배려와 개선 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영화산업시스템과 제도에 다시 한 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월급으로 치면 52만원이 채 되지 않는,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일하는 평균적인 영화 스태프들의 현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계만의 일일까?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채 지하 전세방에서 발견된 인디 밴드 ‘달빛 요정 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씨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문제는 문화계 전반에 산재되어 있다.
생활고로 인해 참담한 삶을 살고 있는 소설 작가, 만화가 등의 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만족할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본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 ‘문화인’ 본인만의 문제일까?

2003년, 너무나 서투른 첫 책을 냈을 때, 운 좋게 동아일보 문화 담당 기자의 눈에 띄게 되어 신문에 책이 소개되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군대에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이 후배는 책을 한 권 내면, 꽤 많은 돈을 버는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책이 많이 팔리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전에도 언급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작가’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호칭만 그럴싸할 뿐이지 ‘시, 소설, 만화, 시나리오’등을 한다는 것은 ‘마이너의 길’, 바로 그것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 내려있다.
아마 많은 무명작가들이 경험했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도 대놓고 ‘얼마 버냐?’고 물어보고, ‘그거 돈이 되냐?’, ‘그런 걸 왜 하냐?’ 등등..듣기만 해도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질문을 쏟아 낸다. ‘작가’라는 것이 쉬 보기 힘든 직업이기에, 그들의 호기심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그럼 당신 월급은 얼마요?’하고 물어보면, 과연 유쾌한 기분으로 받아 넘길 수 있을까?
결국은 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문화’와 ‘창작’에 대한 인식. 그 영역까지도 오직 돈으로 산출해내는 그 인식.
나 역시도 십 여 권의 책을 내고 어찌어찌 ‘작가’라는 호칭 아래 살아가고 있지만, 모 인터뷰에서 ‘만화를 선택하려고 했을 때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창작자’에 대한 선입관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다.

창작자가 만들어내는 ‘문화’는 창작자의 것만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숨결과 더불어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창작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쓴다는 것, 그린다는 것,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꿈’을 위해 ‘창작’의 길에 뛰어든다. 열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 길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어쩌면 낙천적인 쪽일까. 나는 만약 ‘그 길을 걷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권해주고 싶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단, 자신이 참을 수 없이 그 일을 좋아한다면, 그 일을 안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최고은 작가가 옆집에 붙였다는 쪽지, “그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그 쪽지를 어떤 심정으로 써 내려갔을 지를 생각하니,
그리고 그 쪽지를 쓰고 있는, 필시 눈물로 범벅이 됐을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그냥.

최고은 작가는 갔지만, 그녀가 세상에 남긴 작품과 꿈은, 또 다른 ‘최고은’은,
영원하기를 바라고 기원한다.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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